20250301_섬티아고 신앙기행, 신안군 섬티아 민박에서의 특별한 기독교 신앙 경험

마음산책교회 진종구 목사를 비롯한 신도 7명은 머나 먼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를 대신하여 섬티아고 1박 2일(2025.3.1~2) 신앙기행에 나섰다. 무려 5시간이 넘는 운전 끝에 안개 자욱한 도착한 신안군 압해도 송공항은 짙은 해무 속에 아른거리는 유토피아의 환영과도 유사했다.

주민 80%가 개신교 신도라는 점에 착안, 한국형 산티아고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여 기획된 14km의 순례길~!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조재갑' 지역주민의 주도 하에 이뤄졌다는데, 예배당의 절반은 주민들이 기부한 땅에 지어졌으며, 주민들이 서로 품앗이를 해가며 건축에 참여했다는 그곳으로 향했다.


1. 베드로 교회(Petrus/Peter Simon)


오전 9시 30분 배를 타고 1시간만에 도착한 대기점도의  1번 순례지인 베드로 교회가 바다 가운데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런 의식 없이 그냥 눈을 감았다 떴을 때 캔버스 위에 펼쳐진 듯한 순백의 벽면과 사파이어 빛 지붕이 어우러진 지금의 이 풍경과 마주했다면, 나의 영혼은 그리스 산토리니로 순간 이동했을 터...


바다 가운데의 베드로 교회는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헤매는 영혼을 인도하는 것처럼 바다를 헤매는 배를 인도하려는 듯 등대처럼 바다에서 밝게 빛나고 있었다. 바닷물이 찰랑거리는 이 길을 걸으며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를 회상할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밀물이 노두길을 넘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무리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까닭에 우리 모두는 순례의 시작을 알리는 종을 한 번씩 타종한 뒤 발걸음을 재촉했다. 갯벌 위에 도드라진 콘크리트 노두길을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평평한 개펄 위 구부러진 하얀 능선 길을 따라 걸을 땐 시간마저 멈춘 듯 고요한 풍경이 눈가로 스쳐 간다. 발끝에 느껴지는 섬 길의 즐거움에 바다와 하늘 사이 비밀스러운 산책을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2. 안드레아 교회(Andreas/Andrew)

 

찰랑이는 물결처럼 즐거운 발걸음을 옮기던 우리는 어느덧 안드레아 교회에 다다랐다. 베드로의 형제이자 세례 요한의 제자였던 안드레아는 예수의 부름을 받아 새로운 길을 걷는다. 예수님의 12사도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이 길은 마치 시간 여행과도 같았다. 

경건한 교회 한쪽에 자리 잡은 고양이 석고상~! 우상이 없어야 할 교회에 고양이 석고상이 자리 잡은 이유는 이 마을에 개가 없어 고양이가 많았기 때문이란다. 고양이는 이곳 주민들에게 친근한 존재였고, 고양이 석고상은 마을의 상징이 되었다. 


천장의 돌절구 종은 태양을, 출입문은 초승달부터 그믐달까지 달의 변화를 담아냈다. 이곳 사람들의 삶은 바다의 밀물과 썰물을 예측해야 했기에 월력을 중심으로 흘러갔음을 알 수 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섬 사람들의 삶은 단순하면서도 풍요로웠다. 출입문에 달의 변화를 담은 이유가 그래서 였구나~!!! 


길가에 펼쳐진 푸른 배추밭은 마치 잊고 지냈던 푸른 꿈 조각들을 다시 펼쳐놓은 듯했다. 어린 시절, 샛노란 속살을 품은 포기 배추를 알지 못했던 나에게 온통 넓게 펼쳐진 파아란 배추는 아스라이 잊고 지냈던 추억을 되살려내는 마법의 푸르름이었다.

겨울 바닷바람이 키워낸 푸른 배추는 봄의 새싹보다 단단하고 풍요로워 그 잎사귀는 마치 고난을 이겨낸 사람의 강인함을 닮았다. 모진 눈보라 속에서 굳건히 뿌리내린 푸르른 배추는 박해 받던 신앙인들의 숭고한 정신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3. 大 야고보 교회(Jacobus/James)


세 번째 순례지인 야고보 교회로 향하는 길은 단순한 여정이 아닌, 성스러운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정과도 같았다. 농로를 따라 100여 미터를 걷고, 구릉진 언덕길을 100여 미터 오르자, 마침내 야고보 교회가 모습을 드러냈다.

야고보 교회는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순교자이자 스페인의 수호성인인 산티아고를 기리는 곳이다. 교회의 뒷면에는 붉은 벽에 십자가가 음각되어 있었는데, 이는 마치 야고보가 예수의 12사도 중 최초의 순교자임을 상징하는 듯했다. 


교회 내부는 힌두교적 문양이 있어 아마도 건축가가 기독교의 의미를 잘못 인식한 듯이 보였다. 고요함 속에서 순례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기도를 올리거나 묵상을 하며 서두름의 시간을 보낸다. 야고보 교회는 뭔지 모를 이교도적 색채가 가득한 공간이었다.

야고보 교회는 단순한 순례지가 아닌, 역사와 신앙이 어우러진 특별한 공간이라는 생각에 잠긴다. 이곳에서 순례자들은 야고보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고,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길 바라며 다음 순례지로 향했다.


4. 요한의 교회(Joannes/John)


네 번째 순례지인 요한의 교회로 향할 즈음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비를 맞으며 저 멀리 널따란 개펄이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 둥근 형태의 요한의 교회가 모습을 드러낸다. 

요한의 집이란 이름은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 사도 요한에게서 유래했다. 그는 열두 제자 중 하나로, 야고보의 동생이며, 예수님의 가슴에 가장 가까이 기댔던 사랑의 사도였다. 그의 이름을 딴 이 집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과 이별, 그리고 기억이 함께 숨 쉬는 장소다.


이곳의 시작은 한 마을의 할아버지에게서 비롯되었다. 그는 평생을 함께한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깊은 그리움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사랑하는 아내를 향한 기억이 바래지 않기를 바랐던 그는, 자신의 땅을 기증하여 요한의 집을 짓게 했다. 

요한의 집에서 창을 통해 보이는 작은 무덤은 단순한 묘소가 아니다. 그것은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사랑의 상징이며, 떠난 이를 기억하는 방식이다. 할아버지는 그 창을 통해 아내에게 말을 걸고, 바람에 실려 오는 속삭임 속에서 그녀의 대답을 들었다. 창은 단순한 유리와 나무가 아닌, 영원을 향해 열린 문이었다.


산 자와 죽은 자를 잇는 창, 그 너머로 보이는 작은 무덤. 그 창은 단순한 틀을 넘어, 한 사람의 사랑과 그리움을 담아낸 통로였다. 이곳은 요한의 교회 즉, 영원한 사랑의 공간이다.

건축가는 할아버지의 사연을 가슴에 품고, 할아버지가 언제든 아내를 바라볼 수 있도록 창을 낸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 집은 한 남자의 사랑을 기리는 기념비가 되었다.

순례길을 걷는 이들은 이곳에서 한참을 머문다. 창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리고, 요한의 집이 전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그곳엔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고, 사랑과 이별이 하나가 된다.


애틋한 사랑이 깃든 곳의 마을은 지붕이 온통 붉은 색이다. 열렬한 사랑을 상징하는 듯, 아니면 사도 요한의 피 끓는 신앙심을 상징하는 듯 그렇게 붉은 색으로 남아있다.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가슴에 기대어 사랑을 전했던 것처럼, 요한의 교회도 우리에게 사랑의 깊이를 가르쳐준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신의 사랑은 이렇게 남아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주기라도 하는 듯 애처로이 비가 내린다.


5. 빌립의 교회(Philip)


잔잔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에 빌립의 교회가 있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였던 빌립, 그는 갈릴리 호수 근처에서 어부로 살아가던 사람이었다. 그의 고향은 베드로와 안드레아의 고향과 같았고, 그의 삶은 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그리고 지금, 그의 이름을 딴 교회가 그 물결 위에 한 폭의 그림처럼 자리하고 있다.

이 빌립교회는 프랑스 작가의 손길로 탄생했다. 갈릴리 호수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교회의 지붕은 마치 반짝이는 비늘을 닮았다. 그 지붕은, 마치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순간을 닮아 있다. 교회의 꼭대기에는 물고기 모양의 장식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기독교적인 빌립의 삶을 오롯이 담아내는 상징이기도 하다.


교회의 벽을 이루고 있는 돌들은 이곳 섬 주변에서 하나하나 주워 모아 씻고 다듬어 쌓아 올린 것이다. 마치 제자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었듯이, 이 벽 또한 작은 돌들이 모여 거룩한 집을 완성했다. 그 돌 하나하나에는 섬티아고의 바람과 시간이 스며들어 있으며, 지나가는 순례자들의 손길이 머물러 있다.

프랑스 남부의 전형적인 교회 양식을 따랐다는 빌립교회.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영혼은 이곳 바다의 물결과 함께 살아 숨 쉰다. 호수를 사랑했던 빌립이 이곳을 바라본다면, 어쩌면 어린 시절 자신이 뛰놀던 그 호숫가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물결 위를 걸어오시던 예수님의 모습을 다시금 가슴에 품을 것이다.

이곳에 서면, 바람이 지나가듯 시간도 천천히 흐른다. 물고기 비늘 같은 지붕 아래에서, 빌립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마음 한켠이 따스해진다. 이 교회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그것은 갈릴리 호수를 닮은 믿음의 이야기, 그리고 빌립이 남긴 사랑과 헌신의 노래다.


6. 바르톨로메오 교회(Bartholomaeus)

대기점도를 벗어나 노두길을 따라 걸어갔다. 얼마 가지 않아 호수 위에 떠 있는 유리의 성이 나타났다. 호수 위에 둥둥 떠 있어 물 위를 예수님처럼 걸어 갈 수 없다면 가까이서 유리성을 관찰한다는 것은 무리다. 

바르톨로메오(Bartholomew), 또는 요한복음에서 나다나엘(Nathanael)로 알려진 그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으로, 성경에서는 그의 존재가 다소 제한적으로 언급된다. 

요한복음 1장 45-51절에서 빌립이 그를 예수님께 데려오며,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칭찬하셨다. 이 만남에서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이스라엘의 왕"으로 고백하게 된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바르톨로메오는 예수님의 부활 이후 아르메니아에서 선교 활동을 펼쳤고, 그의 노력 덕분에 아르메니아는 서기 301년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것으로 추정된다. 바르톨로메오는 순교할 때 피부가 벗겨지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다고 전해지며, 그의 헌신은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한 것은 서기 313년이지만, 아르메니아의 기독교 국교화는 이보다 79년이나 앞선 일이다. 이러한 사실은 바르톨로메오의 선교적 노력의 결과로 여겨진다. 그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7. 도마의 교회(Thomas)


추적 추적 내리는 빗길을 따라 걷다 보면, 하얀 벽과 모로코 블루가 어우러진 특별한 집을 발견하게 된다. 이 집은 마치 지중해의 한 마을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며, 그 독특한 색감은 방문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안으로 들어가면 경건한 분위기가 감돕니다. 내부 중앙에는 제대가 자리하고 있으며, 두 개의 촛대가 놓여 있다. 촛대 위로 비치는 아름다운 그림자는 이곳의 영적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무릎을 꿇고 묵상하는 순간은 마음을 정화하고,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을 선물 받는다. 


외벽에 그려진 물고기와 둥근 떡의 조각은 성경 속 오병이어의 기적을 상징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순수한 마음으로 그 은혜로운 이야기를 떠올리기에 충분하였다. 

예수님의 부활 후, 도마(Thomas)는 부활을 믿지 못하고 의심했다. 예수님은 그러한 도마에게 직접 나타나 그의 의심을 지우시며, 믿음을 강화시켰다. 도마는 그 후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의심 많은 도마'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예수님은 도마에게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믿음이란 단순한 사실 확인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녹아드는 은혜의 경지임을 깨닫게 하기 때문에.


8. 마태의 교회(Matthew)

소기점도에서 소악도에 이르는 노두길, 그 중앙에 우뚝 서 있는 마태의 교회. 바닷물이 밀려오면 노두길이 잠기고, 오직 이 교회만이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모습은 마치 세상의 모든 고난을 초월한 듯한 신비로움이 느껴진다. 그곳에 발을 디디며 들어선 우리는, 자연의 품에 안겼음을 실감했다.

잔잔한 바닷물은 이따금 요동치며, 허연 해무는 마치 신의 숨결처럼 부드럽게 감싸온다.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기에 최적의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고요함 속에서 고백하는 우리의 기도는 바다의 속삭임과 하나가 되어, 더 깊은 평화로 이끌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고요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일행은 7명, 자연의 경이로움에 찬사를 보내며 왁자지껄 떠들며 힐링을 느꼈다. 그 소음 속에서도 하나님의 창조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되새기며, 우리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마태의 교회는 그 소리 속에서도 여전히 우아하게 서 있었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바다의 비릿한 향기와 염분기 가득한 바람의 속삭임이 우리를 감싸 안았다. 우리는 서로의 소중함을 느끼며, 그 순간을 영원으로 간직하고 싶어졌다. 마태의 교회는 그런 우리의 소망을 이해하는 듯, 고요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다시 배를 타고 되돌아 나가려 할 때, 시원한 바닷바람이 우리의 얼굴을 스쳤다. 그 바람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위로의 손길이었다. 고요한 바다에서 느꼈던 그 특별한 순간은, 우리의 영혼을 깨우는 경험이었다. 마태의 교회는 그렇게 우리 마음 속에 깊이 새겨진 것이다.

뒤로 아련히 지나가는 마태의 교회를 바라보자니 그곳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정화하고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성스러운 장소였다는 생각이 든다. 잔잔한 바닷물과 뿌연 해무 속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그 순간이 영원히 우리의 기억에 남기를 기원했다.


9. 小 야고보 교회(James)


소악도에 하나 밖에 없는 小야고보 교회~! 섬티아고 순례길, 막바지 여정에서 만나는 작은 야고보 교회는 마치 프로방스의 작은 오두막처럼 따스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예전에 사용했던 재활용 목재로 지어진 이 교회는 동양의 부드러운 곡선미와 서양의 섬세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었다.

교회 내부는 평평한 마루로 꾸며져 있어 마치 고요한 명상 공간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준다. 은은하게 퍼지는 나무 향과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부드러운 빛은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 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도로 쪽 벽면에 자리한 말의 입처럼 튀어나온 돌은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특별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간절한 소망을 품고 그 돌을 붙잡고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많은 순례자가 지친 발걸음을 멈추고 그 앞에서 간절한 마음을 담아 기도를 올린다. 그들의 간절한 염원이 담긴 기도는 조용한 교회 주변을 맴돌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하고 있었다.

작은 야고보 교회는 단순한 종교 건축물을 넘어, 순례자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희망을 불어넣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순례자들은 잠시나마 세상의 번잡함을 잊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얻기에 충분했다.



교회 주변을 둘러싼 푸른 자연은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하고 포근하게 느껴졌다. 작은 야고보의 어머니 또한 마리아였으며, 그러한 어머니의 사랑과 같은 따뜻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교회 마당에 서서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면, 마치 모든 근심과 걱정이 파도에 씻겨 내려가는 듯한 시원함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섬티아고 순례길의 마지막 여정에서 만나는 작은 야고보 교회는 순례자들에게 단순한 휴식 공간을 넘어, 잊지 못할 추억과 감동을 선사하는 듯했다. 그곳에서 경험하는 평온함과 따뜻함은 순례자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10. 유다 타대오 교회 (Thaddaeus/Thaddeus)


섬티아고 순례길, 그 네 번째 섬 진섬으로 향하는 노두길 초입에 자리한 타대오의 교회는 마치 시간을 멈춘 듯 고요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타대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는 야고보의 아들 유다로 불리는 그의 이름처럼, 이 교회는 다양한 얼굴을 가진 매혹적인 공간이었다.

4개의 뾰족지붕은 마치 하늘을 향해 뻗어 나아가는 간절한 염원처럼 웅장하고 아름답다. 푸른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교회 내부를 신비로운 빛으로 물들이고,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빗물에 흐릿하게 번져 마치 꿈속을 거니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특히, 노두길 입구에 자리한 타대오의 교회는 마치 이 섬에 들어오는 모든 이를 따뜻하게 맞이하는 듯한 포근함을 선사한다. 이 교회를 지나치지 않고는 진섬에 발을 들일 수 없다는 듯, 그 존재감은 순례자들의 발걸음을 자연스레 이끌어 신성한 공간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교회 내부는 고요한 침묵과 평온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은은하게 퍼지는 바닷내음과 습기 가득한 빛은 마음의 안식을 가져다주고, 잠시나마 세상의 번잡함을 잊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해 주었다. 타대오의 집에서 우리들은 지친 몸과 마음을 쉬어가며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품는다.


교회 주변을 둘러싼 바닷가 풍경은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하고 포근했다. 푸른 바다와 하늘, 그리고 하얀 안개로 가득한 섬의 전경은 순례자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감싸 안으며 깊은 감동을 던져 주었다. 타대오의 교회는 단순한 종교 건축물을 넘어, 순례자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희망을 불어넣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섬티아고 순례길의 여정에서 만나는 타대오의 교회는 순례자들에게 멋진 풍광을 간직하게 만드는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는다. 그곳에서 경험하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섬만이 간직한 표현하기 어려운 기억이 잔상으로 남아 오랫동안 우리의 뇌리에 간직될 것이다. 


11. 시몬 교회(Simon)


새벽 해무가 가득하여 뒷 배경인 바닷가 풍경이 전해 앵글에 담기지 않는다. 시몬의 교회는 열정적인 열심당원이었던 그의 뜨거운 마음을 닮은 듯 우리에게 새벽의 강렬한 인상을 안개로 남겼다. 교회 앞 출입문과 뒷문이 곧바로 갯벌과 바닷물을 향해 열려 있는 독특한 구조는 마치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처럼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바리새파의 일원이자 페르시아에서 유다 타대오와 함께 복음을 전했던 것으로 알려진 시몬의 흔적이 깃든 이곳은 진섬 솔숲 해변에 자리 잡고 있어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시몬 교회의 가장 큰 특징은 두터운 하얀 벽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마치 파도가 멈춘 듯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모습이다. 그 위에 새겨진 조가비 문양 부조는 마치 바다의 신이 선물한 듯 아름답고 신성한 분위기를 더하고 있었다.

시몬의 교회는 도시의 소음에 찌든 우리들에게 청량감을 더해 주는 듯 다가왔다. 신선한 바다내음, 가슴을 후련하게 만드는 상쾌함, 소리치고 소리쳐도 메아리가 되돌아 올 것 같지 않은 그런 신비스러움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곳이다. 


12. 가롯 유다 교회(Judas Iscariot)


자그마한 섬이고 무인도라서 노두길조차 없는 곳. 그곳에 가롯 유다 교회가 있다. 썰물 때에만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 기다릴 줄 아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 외로운 섬이다. 그 외로움은 아마도 예수님을 배신한 대가가 아니겠는가!

가롯 유다의 배배꼬인 마음을 상징하는 나선형으로 꼬여진 종을 치면서 섬티아고 순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곳이었다. 우리는 한 명씩 종을 치며 다소나마 꼬여있던 마음을 허공에 날려 보냈다. 이것으로 우리의 섬티아고 순례가 끝이나는가?


아니다. 우리 일행 7명은 모두 가롯유다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비좁았지만 그곳에서 30여분간 진행된 우리 교회의 예배는 경건하고 숭고했다. 우리 일행은 마음의 짐을 벗어 던지고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들으며 3월2일 주일예배를 마쳤다. 아마 주일예배를 섬티아고의 좁은 가롯유다 교회에서 드린 사례는 세계 첫 기록일 것이다.  


돌아나오는 길에 섬 측면으로 돌아갔다. 예수 12제자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해안 방파제 역할을 하면서 섬의 흙이 바다로 유실되지 않도록 쌓은 콘크리트 장벽에 그림이라니...!!! 그래도 나름 멋지다. 우리의 1박 2일에 걸친 섬티아고 순례예배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