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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_J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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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죄인'이라는 단어를 도덕적 실패나 불법적인 행동을 저지른 사람으로 이해하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사용된 옵헤일레마 ὀφείλημα (opheilēma)라는 단어는 단순히 도덕적 잘못이나 범법적인 행위에 그치지 않고 더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중 중요한 개념이 바로 '빚(debt)'입니다.
헬라어에서도 죄는 빚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주기도문에서도 영어 성경에서는 'debts(빚)'로 번역됩니다.
주기도문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태복음 6:12). 이 구절의 원어를 깊이 들여다보면 "죄"로 번역된 단어는 실제로 '빚(debt)'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빚진 자임을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하나님께 빚진 자, 즉 '죄인'으로 불리게 된 것일까요?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빚을 진 존재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으로 우리는 생명을 얻고 돌봄을 받습니다. 부모의 무한한 희생과 사랑은 우리가 감히 계산할 수 없는 빚입니다. 더 나아가 성장하면서 가족의 보호, 학교의 교육, 이웃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이 모든 것이 인간 스스로 얻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받았다고 착각할 수 있지만, 실상은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사랑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도로, 전기, 물 등 사회간접자본은 모두 누군가의 수고와 사회적 혜택을 통해 주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도움은 우리가 결코 갚을 수 없는 빚입니다.
또한 자연과 환경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빚입니다. 우리는 공기를 사서 마시지 않고 햇빛을 사서 받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무한한 은혜로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빚을 어떻게 갚고 있을까요? 오히려 환경을 파괴하고 자원을 남용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인간은 하나님께 가장 큰 빚을 진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이러한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며 하나님께 등을 돌리곤 합니다. 이러한 배은망덕한 태도가 바로 '죄'의 본질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빚진 자로서 살아가지만 그 빚을 갚을 능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노력과 선행으로는 하나님의 완전한 기준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빚진 사람, 즉 죄인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 중 하나는 "다 이루었다(요한복음 19:30)"입니다. 이 말씀은 헬라어로 "테텔레스타이(τετέλεσται)"인데, 이는 상업 용어로 "빚이 완전히 청산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우리의 죄와 빚이 완전히 탕감되었음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으로 불린다는 것은 단순히 정죄받아야 할 존재라는 의미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이웃, 자연과 사회에 빚을 지고 살아가는 존재임을 깨닫게 합니다. 하지만 이 깨달음은 우리를 절망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감사와 겸손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갚을 수 없는 빚을 대신 갚아 주셨기에 이제 우리는 은혜의 빚진 자로서 사랑과 감사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 감사의 예배를 드리며, 이웃에게 그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