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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_J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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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와 하와, 죄의 문을 열었지만… 희망은 남았습니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로마서 5:18-1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주일예배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중심에 두되,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 하나를 통해 우리의 신앙을 더욱 깊이 있게 돌아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혜와 희망이 무엇인지 함께 묵상해보려 합니다.
‘판도라’라는 이름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혹은 ‘판도라의 상자’라는 표현을 들어보셨나요? 이 말은 흔히 어떤 위험한 일이나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잘못 열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나 재앙이 쏟아질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표현의 뿌리를 따라가 보면,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한 여인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습니다. 바로 판도라(Pandora)라는 여인이죠.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은 올림포스 신들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티탄 신족 중 한 명인 프로메테우스에 의해 흙과 물로 빚어진 존재입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사랑했고, 그들이 자립하고 문명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도록 불을 훔쳐다 주었습니다. 이 불은 단순히 불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요리와 도구 제작, 금속 가공 등 인간 문명의 모든 기술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행동은 올림포스 신들의 제왕인 제우스의 분노를 사게 됩니다. 그는 프로메테우스를 코카서스 산에 쇠사슬로 묶어 놓고, 매일 독수리가 그의 간을 쪼아먹게 하는 끔찍한 형벌을 내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우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인간 역시 벌을 받아야 한다고 여긴 그는 인간을 파멸시킬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존재를 만들어 복수의 도구로 보내기로 합니다. 그것이 바로 판도라였습니다.
모든 신들은 판도라에게 자신들의 최고의 특성들을 부여합니다. 아프로디테는 아름다움을, 아테나는 솜씨와 지혜를, 헤르메스는 유혹과 교활함을, 헤파이스토스는 그녀의 육신을 정교하게 빚어내며 그녀는 말 그대로 ‘모든 선물을 받은 자’가 됩니다.
그런데 이 판도라에게 제우스는 단 하나의 명령을 내립니다. 절대로 열지 말라고 경고한 상자를 하나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상자 안에는 온갖 고통과 질병, 미움과 죽음, 절망과 전쟁이 담겨 있었지만, 판도라는 자신 안에 심어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상자를 열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세상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아주 흥미로운 반전을 품고 있습니다. 상자 안에는 마지막으로 하나의 무언가가 남아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희망’이었습니다. 절망이 가득한 세상 한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한 가지, 그것이 희망이라는 메시지는 이 신화가 전하고자 한 인류에 대한 깊은 통찰이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는 성경 속 또 다른 여인의 이야기로 눈을 돌려보려 합니다. 창세기 2장과 3장에는 하나님께서 아담에 이어 빚으신 여인, 하와가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을 허락하시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마음껏 먹되, 단 하나, 선악과만큼은 먹지 말라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뱀이 하와를 유혹합니다. “이 열매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져 선악을 알게 될 것이다”라는 말에 하와는 결국 선악과를 따먹고, 아담도 함께 먹게 됩니다.
그 순간 그들의 눈이 열렸고, 자신들이 벗었음을 알게 되었고, 두려움에 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단절되었고, 결국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며, 인간은 고통과 수고와 죽음을 겪는 존재로 전락하게 됩니다.
하와가 저지른 죄는 단순한 실수라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고 스스로 하나님의 명령에서 멀어지고자 하는 교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한 번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인해 모든 인류는 고통의 역사를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 신화 속 판도라가 재앙을 풀어놓았지만 마지막에 ‘희망’이 남아 있었던 것처럼, 성경도 또한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소식을 전해줍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모든 것이 무너진 듯 보였지만, 하나님은 그 가운데 ‘희망’을 남겨두셨다는 것입니다. 그 희망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5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생명에 이르렀다.”
하와의 범죄로 인류에게 죄가 들어왔지만, 예수님의 순종으로 우리는 다시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생명의 문을 여신 두 번째 아담이 되셨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희망’은 형체 없는 막연한 감정에 불과했지만, 성경에서 ‘희망’은 살아 계신 인격이요,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체로서 아주 구체적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더 이상 판도라의 상자처럼 절망만 남아 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며, 주님이 여신 은혜의 문을 통과한 자들입니다.
하와가 죄의 문을 열었다면, 예수님은 생명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고 붙드는 자에게 하나님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십니다.
혹시 지금 인생의 무게가 너무 무겁고, 죄책감이나 후회 속에서 스스로를 정죄하고 계시지는 않으신가요? 혹시 하와처럼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을 더 신뢰하여 넘어진 순간이 있으신가요?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와의 실수도 하나님의 계획을 무너뜨릴 수 없었고, 판도라의 상자에서도 희망은 남아 있었던 것처럼, 여러분의 인생에도 하나님께서 남기신 희망과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미래에 대한 기대나 긍정의 감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을 위해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죄를 넘어서 생명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아가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절망을 전하는 자들이 아니라, 희망을 선포하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이 시대의 판도라 상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소망이 흘러나오는 은혜의 문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 다시금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어 주님께 돌아가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분 안에서 참된 회복과 생명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길을 주셨습니다. 죄의 문은 하와로 인해 열렸지만, 생명의 문은 예수님으로 인해 열렸습니다. 그 문 안에서 우리는 다시 태어나고, 다시 소망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복음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