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요한복음_John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이스라엘의 역사는 신앙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이데올로기의 역사였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일이 종종 정치적 이해관계와 얽히며 변질되었다.
신앙은 본래 하나님께 향해야 하지만, 인간의 욕망과 권력의 계산이 개입될 때 ‘이데올로기’라는 이름으로 바뀌어버렸다.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돌아보며, 신앙과 이데올로기의 차이를 분명히 살펴보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깊은 교훈이 된다.
솔로몬의 뒤를 이은 르호보암은 백성의 짐을 더 무겁게 하겠다고 선언했고, 결국 북쪽 열 지파는 반기를 들어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웠다.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리되었다. 그러나 분열된 두 나라는 결국 멸망의 길을 걸었다.
북이스라엘은 BC 722년 앗시리아의 침략으로 멸망했다. 앗시리아는 ‘주민 이주 정책’을 시행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고, 다른 민족들을 사마리아 땅으로 데려와 강제로 섞어 살게 했다. 그 결과 피가 섞인 혼혈 민족이 생겨났고, 이들이 훗날 ‘사마리아인’으로 불리게 되었다.
남유다는 BC 586년 신바빌로니아 제국에 의해 멸망하여 많은 백성이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그러나 이후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신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키고 포로 귀환을 허락하면서 유대인들은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바빌론 포로기를 거치며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율법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강화했고, 무엇보다 혈통적 순수성을 지키려 애썼다.
이 차이가 갈등의 불씨가 되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혼혈 민족으로 취급되어 배척받았고, 남유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혈통적 순수성을 자부하며 그들을 멸시했다. 따라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대립은 단순히 신학적 논쟁이 아니라, 혈통적·정치적·이권적 이해관계가 얽힌 이데올로기적 대립이었다.
유대인들이 귀환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당시, 사마리아인들이 성전 건축을 돕겠다고 나섰을 때, 유대인들은 거절했다. 표면적으로는 신앙의 순결을 지키기 위함이었지만, 실제로는 재산과 권리를 나누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들과 연합하면 우리의 이익이 줄어든다.” 이것이 진짜 이유였다.
이후 BC 113년, 유대의 지도자 요한 힐카누스가 사마리아 성전을 파괴했을 때도 상황은 같았다. 예루살렘 성전만이 진짜라는 배타적 이데올로기를 강화했을 뿐이다. 신앙이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혈통적 계산이 신앙을 지배한 것이다.
누가복음 10장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에서도 같은 메시지가 확인된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도 지나쳤다. 이데올로기가 그들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유대인인지, 사마리아인인지 몰랐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달랐다. 그는 이데올로기를 제거하고 그 사람을 단순히 고통받는 인간으로 보았다. 이것이 눈을 가리던 이데올로기를 제거한 참된 신앙이다.
오늘 한국 사회를 돌아보면 이스라엘의 역사가 낯설지 않다. 정치권은 좌와 우,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진영 논리에 갇혀 있다. 교회마저 그 흐름에 휩쓸려 이념적 진영 논리에 따라 분열된다면, 누가복음 10장처럼 강도 만난 이웃은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
이데올로기는 사람을 분류하지만, 신앙은 사람을 구원한다.
이데올로기는 집단과 동지를 찾지만, 신앙은 이웃을 발견한다.
이데올로기는 진영을 가르지만, 신앙은 생명을 살린다.
오늘 교회는 이데올로기의 장벽을 뛰어넘어야 한다. 영과 진리 안에서 하나님께 참되게 예배하고, 고통받는 이웃을 발견하여 사랑으로 다가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보여주신 길이며, 교회가 걸어가야 할 참된 신앙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