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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_J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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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마태복음 5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산상수훈 말씀 중 가장 도전적이고,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쪽 뺨을 돌려대라"는 이 말씀은 문자 그대로 지키기에는 너무나 이상적으로 들립니다. 누군가는 비현실적인 가르침이라 여기고, 또 누군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너무나 비굴하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의문을 가집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이 말씀을 단순히 낭만적인 이상론으로 치부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예수님의 깊은 뜻과 놀라운 지혜를 발견하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결코 현실을 모르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태어날 때부터 피난민의 삶을 사셨고, 공생애 동안 머리 둘 곳 없이 고단한 길을 걸으셨으며, 결국은 폭력의 희생양이 되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고단한 삶을 사셨는지는 히브리서 5장 8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지킬 수 없는 이상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부당함에 대해 가장 현실적이고 강력하게 대응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그 시대의 法인 '동해 보복법(同害報復法)', 즉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흔히 이 법은 야만적인 복수를 허용하는 것처럼 오해되지만, 사실 그 본래의 입법 취지는 '복수의 제한'에 있었습니다. 받은 害만큼만 되갚게 하여 그 이상의 무분별한 복수극을 막으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사를 보면, 인간의 감정은 항상 받은 것 이상으로 갚아주려 했습니다. 성경 속 가인의 후손 라멕의 사례처럼, 작은 상처에도 일흔일곱 배로 복수하겠다는 폭력적인 선언은 폭력의 악순환이 얼마나 쉽게 시작되고 멈추지 않는지를 보여줍니다.
이것이 바로 폭력의 가장 큰 문제점입니다. 한 번 시작되면 끊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더 큰 폭력을 낳습니다.
이 점에서 오늘날 게임 이론의 '관대한 티포텟(Tit for Tat) 전략'은 흥미로운 통찰을 줍니다. 이 전략은 상대가 협력하면 나도 협력하고, 상대가 배신하면 나도 한 번만 배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관대한 티포텟(Generous Tit for Tat) 전략'은, 상대의 한두 번의 배신은 용서하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 전략은 비록 한두 번의 손해를 감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 모두에게 가장 큰 유익을 가져오는 가장 효율적인 전략임이 증명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러한 '관대한 티포텟' 전략보다 훨씬 더 깊고 아름다운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폭력적인 방식을 그대로 복사하여 되돌려주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존엄과 위엄을 지키고, 심지어 가해자에게조차 깨달음을 주는 방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1.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쪽 뺨을 돌려대라
고대 유대 사회에서 오른 손등으로 상대방의 오른쪽 뺨을 때리는 것은 왕과 신하, 장군과 부하, 주인과 노예 사이의 행위였습니다. 이는 동등한 신분에게는 절대 하지 않으며, 하위 계급을 향한 폭행이었습니다.
그런데 손바닥으로 때리는 행동은 동등한 사람 간의 행위죠. 왼뺨을 돌려댄다는 것은 결국 때리는 사람이 오른손잡이일 경우 손바닥으로 때리게 되는 겁니다. 이는 갑자기 두 사람 사이가 동등관계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때리는 사람이 얼마나 수치스럽겠습니까.
예수님은 "오른쪽 뺨을 맞거든 왼쪽 뺨을 돌려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행동은 가해자를 당황스럽게 만듭니다. 폭력에 굴종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가해자가 흥분하여 다시 손바닥으로 왼쪽 뺨을 치게 되면, 그 순간 가해자와 피해자는 같은 신분으로 내려서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폭력에 굴종하거나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은 나의 존엄을 빼앗을 수 없다"고 선언하며 용기 있게 맞서는 지혜로운 저항 방식이었던 것입니다.
2.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 겉옷까지 주어라
당시 가난한 사람의 겉옷은 유일한 담보물이자 밤에는 이불 역할을 했습니다. 율법은 가난한 사람의 겉옷을 저당 잡아도 밤이 되기 전에는 반드시 돌려주어야 한다고 규정했습니다. 그러니 누가 겉옷을 저당잡으려 하겠습니까?
가난한 사람이 빚을 갚지 못해 속옷까지 빼앗기는 상황은 가난한 사람의 존엄을 짓밟는 극한의 폭력이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겉옷까지 주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모든 옷을 벗고 나체로 거리를 지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이 행동으로 인해 마을사람들은 가해자인 채권자를 욕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사람들은 모든 가정의 형편을 잘 알고 있었는데 저렇게 가난한 사람의 속옷까지 벗겨가야 되느냐는 동정심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옷을 벗은 사람은 피해자지만, 그를 나체로 만든 가해자가 오히려 공동체의 수치거리가 됩니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이라도 폭력에 굴종하지 않고 존엄을 지켜내는 지혜로운 방법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3. 강제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십 리를 가라
로마 점령 하의 유대 사회에서 로마 군인은 길 가던 사람에게 짐을 지게 하고 '약 1마일'까지 동행을 강요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로마 군법이 허용한 합법적인 폭력이었습니다. 힘없는 사람들은 로마 군인의 부당한 요구에 순응하며, 자신의 인간적인 존엄을 잃어갔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오 리를 가게 하거든 십 리를 함께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1마일을 넘어 2마일까지 가면 로마 군인은 군법을 어기게 됩니다.
이 예기치 않은 행동은 권력의 부당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피해자가 자신의 존엄을 잃지 않고 폭력에 저항하는 용기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는 권력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권력의 한계를 넘어서게 함으로써 저항하는 방식입니다.
이 세 가지 비유는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다양한 폭력적인 상황, 예를 들어 직장 내 '갑질'이나 부당한 요구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실용적인 지혜를 줍니다.
우리는 결코 비굴하게 살거나, 폭력을 내면화하여 '내가 맞을 만해서 맞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존엄과 위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잃어버릴 수 없는 소중한 것입니다.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저항 운동이 바로 이 예수님의 지혜를 현실에서 실천한 대표적인 예입니다. 간디는 영국 제국주의의 폭력에 맞서 똑같은 폭력으로 되갚지 않고, "악한 사람에게 폭력적으로 맞서지 말라"는 예수님의 명제를 따랐습니다. 그 결과, 그는 단순한 폭력의 악순환을 넘어, 비폭력의 힘으로 인도의 독립을 이끌어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히 용서하라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그것은 폭력을 중단시키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며, 우리 자신과 가해자 모두에게 인간의 존엄을 되새기게 하는 지혜로운 전략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결코 무기력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떠한 폭력적인 상황에서도 폭력의 고리를 끊어내고, 용기와 창조적인 지혜로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용기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의 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의 존엄을 잃지 않고,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용기와 지혜를 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