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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_J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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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9장 2절에서 영어 성경 번역 간의 뉘앙스 차이는 단순한 어휘 문제가 아니다.
KJV(킹제임스 성경)는 “Have ye received the Holy Ghost since ye believed?”라고 쓰여 있어 ‘너희가 믿은 후에 성령을 받았느냐’는 의미를 준다.
반면 현대 역본인 NIV는 “Did you receive the Holy Spirit when you believed?”라고 번역해 ‘믿은 그 순간에 성령을 받았느냐’는 의미다. 이 작은 차이는 성령세례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에 대한 신학적 분기점이 된다.
한국에서 이 신학을 대표하는 교단으로는 하나님의성회(Assemblies of God), 포스퀘어복음교회(The Foursquare Church, 한국에서는 대한예수교복음교회) 등이 있다.
이들 교단은 사도행전의 기록처럼, 회심(예수를 믿는 일)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이후에 또 다른 ‘성령세례’ 경험이 있다는 신학을 가진다. 그들은 방언, 예언, 치유 같은 ‘외적 표지’를 성령이 임한 증거로 본다.
이 논리는 이렇게 연결된다. 먼저 사람이 예수를 믿고 회심한 뒤에도, 성령의 능력이 충만히 임하는 두 번째 사건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8장(사마리아인)이나 19장(에베소 제자)에 나타난 안수와 방언, 예언 같은 현상을 근거로, 성령세례는 거듭남(Born again)과 구별된 경험이라는 것이다.
이에 비해 정통 장로교는 이런 은사주의에 반대한다. 장로교 전통에서는 성령세례를 회심과 동시에 주어지는 것으로 본다.
즉,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그 순간,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내주하신다는 것이다. 방언이나 환상 같은 극적인 체험이 반드시 따라야 할 증거는 아니며, 대신 삶의 변화나 성화(즉 성령과 더불어 자라는 삶), 사랑과 섬김 같은 열매를 중요하게 본다.
이 점은 로마서 8장과 고린도전서 12장에서도 일관되게 드러난다. 로마서 8장에서는 “아무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롬 8:39)고 말하며,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됨을 강조한다. 또한 같은 장에서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사실이 신자 삶의 핵심으로 기록돼 있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는 성령이 주시는 은사들에 대해 말하지만, 이 은사들이 서로 다르다고 해서 성령의 내주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몸은 하나이지만 지체는 많다”(고전 12:12)라는 비유로, 다양한 은사와 역할이 있지만 모두 한 성령이 주시는 것으로 설명한다.
즉, 성령의 임재는 ‘한 번의 세례’로 충분히 설명되며, 여러 은사는 그분이 각 신자에게 주시는 다양성이지 본질의 분리가 아니다.
첫째, 성경 전체의 흐름을 보면, 성령의 내주는 구원과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예수를 믿는 믿음과 성령의 내주는 끊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다.
둘째, 사도행전의 방언·예언 등의 기록은 초대교회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복음 확장, 사명 중심)에서 일어난 것으로 볼 여지가 크다. 이를 모든 신자와 모든 시대의 표준으로 삼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셋째, 웨스트민스터 전통에 의하면, “성령은 우리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시고, 동시에 우리를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시는 분”이라는 균형 있는 이해를 가능하게 해 준다.
더 쉽게 말해, 성령세례란 ‘우리 눈을 열어,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이심을 깨닫게 하시고, 구주이심을 고백하게 하시며, 그분을 영접할 때 주시는 역사’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그 순간, 성령은 우리 안에 계신다. 그리고 그 안에 계신 성령은 삶을 변화시키고 성장하게 하시며, 우리에게 은사를 주시지만, 그 은사가 성령의 정체성을 바꾸지는 않는다.
필자가 제시한 위 설명은, 성령을 ‘험한 체험’으로만 보려는 시각 대신, 성령과 동행하며 변화되어 가는 신앙의 여정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우리 신앙은 화려한 증거보다,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시작된 성령과의 평생 동행에서 온전해지기 때문이다.
jj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