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5:20–29 ) 오늘, 사망에서 생명으로... 부활의 현재성

 


본문: 요한복음 5장 20–29절 

안식일 논쟁과 아들의 자기 계시

오늘 본문은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예수님의 사역에서 시작됩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병을 고치고 그 병자가 자리를 들고 걸어간 행위를 문제 삼아 예수님을 박해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자신과 아버지 하나님의 관계를 밝히시며, 당신이 누구신지를 엄중히 선포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구원과 부활이 먼 미래의 막연한 약속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현재적 사건'임을 확인하고자 합니다.


1. 아버지의 일을 행하시는 아들의 권한

예수님께서는 먼저 당신의 신적 기원을 밝히십니다.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19절). 이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본질적으로 하나임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심판의 권한을 아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이는 아들을 공경하는 것이 곧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부인한 것은 결국 하나님을 부인한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이토록 장황하게 자신의 권한을 설명하신 이유는 유대인들의 뿌리 깊은 불신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이들이 눈앞의 진리를 외면하고 불신 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나 심판의 주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2. 부활의 시제 _ '이미' 얻은 영생

이제 가장 핵심적인 24절의 말씀을 함께 묵상하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여기서 강조하고 또 강조해야 할 점은 바로 시제입니다. 성경은 '영생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영생을 얻었고'라고 선언합니다. 또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질 것이다'가 아니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명시합니다.

이는 부활과 구원이 미래의 어느 시점에 일어날 막연한 사건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확정된 '현재형'의 사건임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현재 심판의 권세를 가지고 주관하시기에, 우리가 그분을 믿는 그 찰나에 우리는 이미 영생의 소유자가 된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의 부활을 이미 경험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이 놀라운 현재적 축복을 믿지 못하고 거부했던 것처럼, 현대인들 역시 미래의 보상만을 생각하거나 아예 불신에 빠져 살아가곤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믿는 자에게 부활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3. 존재적 연합과 은혜의 선물

우리가 이처럼 놀라운 구원을 얻는 것은 우리의 공로나 노력이 아닙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에베소서 2:8-9)

이 구원의 신비는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 더욱 명확해집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요한복음 15:4-5)

포도나무 가지가 본체에 붙어 있으면 생명액이 흘러 들어와 자동적으로 열매를 맺듯, 사람이 하나님께 의존하는 가지와 같은 존재가 될 때 생명은 흐르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십자가 사건을 진실로 믿는다면, 우리는 본성적으로 구원을 받은 존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관계 속에 거하는 것 자체가 곧 구원의 완료입니다. 이 선물을 받은 자는 새로운 존재로 재탄생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

 

4. 두 종류의 부활과 현재의 삶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엄중히 선포하십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29절).

여기서 말하는 선한 일이란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생명의 법을 따르는 삶을 의미합니다. 현재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생명을 누리는 자는 그 생명이 완성되는 부활로 나아갈 것이요, 지금 예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과의 단절 속에 사는 자는 결국 그 단절의 결과인 심판의 부활로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즉, 마지막 날의 부활의 형태는 '오늘' 우리가 어떤 생명 안에 거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내는 부활의 능력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은 죽음 너머의 먼 미래 이야기가 아닙니다. 부활은 오늘을 살아내는 '현재형'의 실재이며 능력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사망에서 생명으로의 이동은 이미 완료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미래의 약속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금 이 순간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실제적인 사건입니다. 죽음의 구조와 절망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도 우리가 생명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영생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미래의 사건이 아닌 '오늘의 삶'으로서의 부활을 누리며 현재의 삶에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JayGee J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