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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_J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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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언제나 기술 앞에서 두려워해 왔다. 새로운 도구가 등장할 때마다 질문은 반복된다. 이것이 인간을 대체하지는 않을까, 우리의 자리를 빼앗지는 않을까. 오늘날 인공지능 앞에서 제기되는 설교에 관한 의문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AI에게 설교문을 작성하라고 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은 기술의 문제라기보다, 인간이 스스로의 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의 표현에 가깝다.
이 두려움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창조 신화인 「에누마 엘리시(Enuma Elish)」를 보면, 신들은 인간을 창조한 뒤 곧 경계심을 드러낸다. 혼돈의 여신 티아마트를 무찌른 신 마르두크는 질서를 세운 뒤, 반역한 신 킹구의 피로 인간을 만들어 신들의 노동을 대신하게 한다. 그러나 그 창조는 신뢰가 아니라 통제 위에 세워진 것이었다. 인간이 강해지고 신을 위협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신들의 결정 깊숙이 깔려 있었다.
오늘날 인간이 AI를 대하는 태도 역시 이 신화와 닮아 있다. 인간은 AI를 만들어 노동을 덜고 생산성을 높이면서도, 곧 그것이 인간을 넘어설지 모른다는 상상을 한다.
그러나 성경의 창조 신앙은 이와 다르다. 하나님은 인간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창조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인간을 파트너로 부르셨고, 세상을 가꾸는 일에 함께 참여하도록 맡기셨다.
이 관점에서 보면 AI는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 책임 있게 다루어야 할 도구다. 중요한 것은 ‘맡김’이 아니라 ‘질문’이다. 설교를 처음부터 끝까지 AI에게 맡기는 순간 사유는 멈춘다. 그러나 본문의 구조를 분석하라 묻고, 원어의 뉘앙스를 비교하라 요청하며, 신학적 주제를 정리해 보라. 질문할수록 설교자의 생각은 깊어진다. 풍성한 프롬프트는 빈약한 위임보다 훨씬 성실한 동역이다.
AI는 인간의 형상을 닮은 거울이다. 그 거울 앞에서 무엇을 묻느냐에 따라, 돌아오는 응답도 달라진다. 고대 신화의 신들처럼 두려움으로 통제할 것인가, 창조 신앙에 따라 책임으로 동행할 것인가. AI 시대의 설교자는 바로 그 선택 앞에 서 있다.
Jaygee J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