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5:30-47 ) 말씀을 가장 잘 아는 자들이 말씀의 완성이신 예수를 거부했다.


(요한복음 5장 30–47절)

말씀을 가장 많이 읽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율법의 문장 하나하나를 외웠고,
모세의 글을 가장 정확하게 해석한다고 자부했다.
그들에게 성경은 삶의 기준이었고,
신앙은 질서였으며,
하나님은 늘 말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러나 그 모든 확신의 한가운데에서
예수는 환영받지 못했다.

요한복음 5장에서 예수는 자신을 변호한다.
그러나 그 변호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되었는지를
차분히 드러내는 고백에 가깝다.

그는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 말은 연약함의 표현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나지 않겠다는
완전한 일치의 선언이었다.
그의 판단이 의로운 이유는
그 판단이 언제나 하나님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의로움을
위협으로 느꼈다.

하나님은 이미 충분한 증거를 주셨다.
광야에서 외치던 요한의 목소리가 있었고,
병자가 일어나고 생명이 회복되는 장면들이 있었으며,
하늘로부터 들려온 하나님의 증언도 있었다.
무엇보다 성경 자체가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그들은 성경을 읽었으나
성경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는 보지 않았다.
말씀을 연구했으나
말씀 안에 계신 분을 만나는 일에는
마음을 열지 않았다.
성경은 영생으로 인도하는 길이었지만,
그 길 끝에 서 계신 예수를 향해
그들은 한 걸음도 내딛지 않았다.

예수는 그 이유를
정확히 알고 계셨다.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들이 성경을 몰라서도 아니었다.
그들이 선택한 영광의 방향이
이미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서 오는 인정,
서로 주고받는 존중,
지위를 잃지 않기 위한 침묵.
그 모든 것이 예수보다 소중해진 순간,
믿음은 조용히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예수는 말한다.
“너희가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그 말은 정죄가 아니라
이미 길을 잃은 이들을 향한
깊은 애도의 문장처럼 들린다.

마침내 그들이 의지하던 모세가
그들을 고발한다.
율법은 구원의 목적이 아니었다.
율법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손가락이었다.
그러나 그 손가락을 붙잡고
가리키는 분을 외면한 순간,
율법은 위로가 아니라 증언이 되었다.

요한복음 5장은 오래된 종교 논쟁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신앙을 향한 질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말씀을 읽고,
말씀을 말하고,
말씀으로 서로를 구분한다.
그러나 정작 말씀 앞에서
자신을 내려놓는 일에는
점점 서툴러지고 있다.

말씀을 가장 잘 안다고 말하는 순간,
말씀의 주인이신 예수를
가장 멀리 밀어내고 있지는 않은가.

이 본문은 지금도 조용히 묻는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예수를 만나고 있는가,
아니면 말씀을 통해
자기 자신을 지키고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예수는 오늘도
말없이 서 계신다.


JayGee J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