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요한복음_John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2026년 설날의 아침이 밝아옵니다. 까치 소리와 함께 찾아오는 이 정겨운 명절에도 우리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지난 삶의 전쟁터가 남긴 생채기들이 가득합니다. 어떤 이는 경제적 파산이라는 성벽이 무너진 채 앉아 있고, 어떤 이는 깨어진 관계라는 폐허 위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예레미야 애가는 바로 인생의 가장 처참한 밑바닥, 즉 기원전 586년 바벨론의 칼날이 예루살렘의 심장을 도려낸 직후의 풍경을 담고 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신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2세 왕은 자비가 없었습니다. 거룩한 성전은 화염에 휩싸였고, 다윗의 자부심이었던 성벽은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을 만큼 처참히 허물어졌습니다.
살아남은 자들은 쇠사슬에 묶여 포로로 끌려갔고, 거리는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자들의 통곡 소리조차 잦아든 적막한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애가(Lamentations)'라는 제목 그대로, 이 말씀은 숨조차 쉬기 힘든 국가적 장례식장 한복판에서 터져 나온 눈물의 기록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일은, 이 칠흑 같은 어둠의 한복판에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소망'을 노래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그는 바벨론의 군홧발이 짓밟고 지나간 그 폐허 위로 매일 아침 어김없이 떠오르는 태양을 보았습니다.
본문 22절은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 때문이라고 단언합니다. '진멸'이라는 단어는 뿌리째 뽑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우리의 허물과 세상의 풍파를 생각하면 우리는 벌써 몇 번이고 무너졌어야 마땅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무궁한 자비라는 거대한 방파제가 우리 삶을 에워싸고 있었기에 우리는 소멸하지 않고 오늘이라는 시간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설날 아침, 가족들이 모여 서로를 바라보며 가장 먼저 고백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은혜의 생존 보고'입니다. 우리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긍휼이 쉬지 않고 작동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가 유통기한이 지난 낡은 것이 아니라 '아침마다 새롭다'고 선언합니다. 이것은 어제의 은혜를 재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신선한 은혜가 매일 아침 새롭게 창조되어 우리에게 배달된다는 뜻입니다. 마치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일 아침 새로운 만나를 거두었던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흔히 과거의 실패나 죄책감에 매여 새해를 시작하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비는 매일 아침 갓 구운 빵처럼 신선하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해를 맞이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는 과거를 후회하는 탄식이 아니라, 오늘 아침 새롭게 베풀어질 하나님의 선물을 기대하는 설렘이어야 합니다.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기에, 우리의 어제가 어떠했든 하나님의 오늘은 여전히 찬란할 수 있다는 소망을 선포해야 합니다.
이 말씀의 진정한 무게를 삶으로 증명한 이가 있습니다. 찬송가 '오 신실하신 주'를 작사한 토마스 치솜(Thomas Chisholm)입니다. 그는 평생 몸이 약해 목회를 중단했고, 보험 외판원과 신문 기자로 일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야 했던 평범한 소시민이었습니다. 그의 인생에는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75세가 되어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 삶에 대단한 이적은 없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돌아보니 아침마다 해가 뜨듯 하나님의 자비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나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화려한 성공이 아니라, 매일 아침 자신의 창가에 비치는 햇살 속에서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발견했습니다. 보험 외판원으로 일하며 거절당하고 지친 몸으로 귀가하던 저녁에도, 다음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자신을 일으켜 세우시는 하나님의 신실함에 압도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설날이라는 새로운 시간의 갈피를 넘깁니다. 올 한 해 우리 앞에 어떤 광야가 펼쳐질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우리가 일어나는 매일 아침 하나님의 자비는 어김없이 우리 문 앞에 당도해 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주님을 잊을 때조차, 주님의 성실하심은 단 한 번도 우리를 잊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번 설날, 가족과 함께 나누는 떡국 한 그릇 속에, 그리고 서로에게 건네는 덕담 속에 이 '성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담아보시길 바랍니다.
폐허 틈 사이로 비쳐오는 하나님의 서광이 여러분의 가정에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우리를 붙들고 계시기에, 우리의 2026년은 반드시 소망의 항구에 닿게 될 것입니다.
JJ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