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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_J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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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3일 방송된 tvN STORY '이호선 상담소'에서는 이호선, 장영란, 인교진이 출연했다. 이날 사연자로 등장한 결혼 13년 차 부부의 남편은 자신의 월수입이 월 1000만원이지만 아내가 설거지는 물론 청소조차 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토로했다.
방송에 등장한 한 여성의 일상은 충격적이었다. 결혼 13년 차, 세 자녀의 어머니이자 전업주부인 그는 집안 청소와 정리를 거의 하지 않았다. 설거지조차 방치된 채 쌓여 있었고, 바닥과 거실은 생활 쓰레기와 물건들로 뒤엉켜 있었다.
남편은 월 1천만 원의 수입을 올리며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지만,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맞닥뜨리는 무질서한 공간은 그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었다. 부부 관계는 13년의 결혼 생활 동안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단절되어 있었고, 부부는 사실상 ‘부부’라기보다 ‘동거하는 타인’에 가까운 상태였다.
그럼에도 이 여성은 자신의 삶에 큰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아이들과의 관계는 좋고, 집은 예전보다 나아졌으며, 청소는 기쁨이 없기 때문에 몰아서 하는 편이라고 설명한다. 무엇보다 그는 일주일에 네다섯 번 교회를 오가며 교회 내 직책을 맡아 헌신하고 있었다.
집안의 무질서와 부부관계의 붕괴, 자녀 양육 환경에 대한 문제 제기 앞에서도 그는 웃음을 잃지 않았고, 교회에 가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내게 기쁨이 넘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 장면은 단순한 가정불화의 사례를 넘어, 종교가 삶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기능하고 있는지를 묻게 만든다.
성경은 신앙과 가정을 분리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정은 신앙이 가장 먼저 시험받는 자리다. 사도 바울은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는 자가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딤전 3:5)라고 말한다. 이는 교회 봉사의 자격을 논하기에 앞서, 신앙의 진정성은 가정에서 드러난다는 선언에 가깝다. 또한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딤전 5:8)라는 말씀은 신앙이 가족에 대한 책임을 대체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문제는 이 사례에서 교회 출석과 봉사가 가정을 살리는 동력이 아니라, 가정으로부터 도피하는 통로로 교회가 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신앙은 삶의 질서를 강화해야 하지만, 이 여성의 신앙은 오히려 삶의 기본 질서—정돈, 책임, 관계—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기쁨’이라는 언어는 반복되지만, 그 기쁨은 배우자에게도, 아이들의 생활 환경에도, 가정의 안정에도 열매로 나타나지 않는다. 성경이 말하는 기쁨은 개인적 도취가 아니라 사랑과 절제, 책임으로 검증되는 공동체적 열매다. 질서 없는 기쁨은 성경적 기쁨이 아니다.
이 사례를 미 정신의학회가 규정한 DSM-5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주의할 점은 분명하다. 방송에 등장한 인물을 실제로 진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윤리적으로도 허용되지 않는다. 다만 관찰된 행동 양상이 어떤 범주에서 설명될 수 있는지는 학문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
이 여성에게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전반적 기능 저하가 아니라 영역 선택적 기능 저하다. 교회 활동과 대외적 역할 수행에서는 높은 에너지와 몰입을 보이지만, 가사, 부부 관계, 주거 환경 관리라는 핵심 생활 영역에서는 현저한 기능 저하가 나타난다.
이는 주요우울장애에서 보이는 전반적 무기력과는 다르다. 오히려 다자녀 양육, 장기 결혼 생활, 역할 과부하라는 스트레스 요인에 대해 회피적 방식으로 반응하는 적응장애(Adjustment Disorder)의 특성과 부분적으로 맞닿아 있다.
또한 DSM-5에는 진단명이 아닌 ‘임상적 관심 대상’으로서 종교적·영적 문제(Religious or Spiritual Problem)가 명시돼 있다. 이는 종교가 개인의 심리적 갈등, 현실 회피, 자기합리화의 도구로 사용될 때 적용될 수 있는 범주다. 이 사례에서 종교는 삶을 통합하는 중심축이 아니라, 책임을 분리하고 불편한 현실을 비켜 가게 하는 심리적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이 사례의 본질은 청소 습관의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회피다. 가사와 정리는 단순 노동이 아니라, 책임과 관계, 현실 직면을 요구하는 행위다. 반면 교회 활동은 인정과 의미, 정체성을 제공한다. 불편한 영역에서 벗어나 보상이 큰 영역으로 이동하는 이 패턴은 심리학적으로 매우 전형적인 회피 행동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문제 인식의 결여다. 객관적으로 심각한 주거 환경과 관계 단절 앞에서도 그는 웃음을 유지하며 상황을 축소하거나 합리화한다. 이는 부인과 합리화라는 방어기제가 동시에 작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방어는 단기적으로 자아를 보호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관계 붕괴와 기능 저하를 고착화시킨다.
이 사례는 우리 사회에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신앙은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가. 더 책임적인 삶으로인가, 아니면 책임으로부터 멀어지는 길로인가. 가정이 무너진 자리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을 수 있다면, 그것은 신앙의 성숙이 아니라 왜곡이다. 신앙은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오히려 삶을 더 정직하게 살아내도록 요구한다. 정리가 무너진 집은 단지 어질러진 공간이 아니라, 책임이 비워진 신앙의 단면일지도 모른다.
TheGraceHera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