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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_J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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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을 돌로 치려는 유대인들 |
예루살렘의 겨울, 차가운 공기가 성전을 감싸 안을 때 유대인들은 '수전절(하누카)'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수전절은 과거 이방 세력에 의해 더럽혀졌던 성전을 정화하고 다시 하나님께 봉헌한 사건을 기념하는 빛의 절기입니다. 바로 이 시기에 예수께서는 성전 안 솔로몬 행각을 거닐고 계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2절에서 39절의 말씀은 참된 성전이신 예수께서 던지시는 준엄한 선포와 사랑의 권면을 담고 있습니다.
수전절(하누카)은 유대 역사에서 매우 극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기원전 2세기경,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4세는 예루살렘 성전을 점령한 뒤 유대교를 탄압하며 성전 제단 위에 돼지를 잡아 바치는 등 참혹한 신성모독을 저질렀습니다.
이에 분노한 유다 마카베오와 그의 형제들은 독립 전쟁을 일으켜 승리했고, 기원전 165년에 성전을 되찾아 깨끗하게 수축(修理)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전을 닦았다'는 의미의 수전절(修殿節)입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성전 등대의 불을 밝힐 기름이 단 하루치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팔일 동안 불이 꺼지지 않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 기간을 '빛의 축제'로 부르며 집집마다 등불을 밝힙니다.
주님은 당신의 양들에게 '영생'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영생은 단순히 시간적으로 오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헬라어 원어의 의미를 되새겨보면, 영생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언제나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즉, 영생은 죽은 뒤에 비로소 시작되는 사후의 보상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의 영원한 시간 속에 잇대어져 그분의 생명력을 풍성하게 누리는 '조에(Zoe)'의 삶입니다.
따라서 영생은 현재의 삶과 사후의 삶을 모두 관통하며 하나님과 분리되지 않는 충만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바로 그 자리에서 영생은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말씀하시자 유대인들은 분개하며 돌을 들었습니다.
그들이 이토록 격렬하게 반응한 이유는 구약 레위기 24장 16절의 엄격한 규례 때문입니다.
레위기에는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예수가 스스로를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명백한 신성모독으로 간주했고, 율법에 따라 그를 즉결 처형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폭력적인 위협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당신이 행하신 선한 일들을 통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깨달으라며 끝까지 대화를 시도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께서는 자신을 돌로 치려는 적대적인 상황 속에서도 대화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상대의 악의를 미움으로 갚는 대신, "내가 행하는 일을 보고서라도 믿으라"며 끝까지 그들의 어둠을 벗겨내려 하셨습니다.
비록 그들이 다시 잡으려 하여 그 자리를 벗어나셨지만, 주님은 이미 수전절의 참 의미인 '성전 정화'를 자신의 말씀과 삶으로 성취하고 계셨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우리의 삶이 누군가에게 하나님을 보여주는 거룩한 통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HeartWalk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