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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_J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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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시는 예수님 |
유월절(넘어갈 踰, 넘을 越, 마디節)의 보랏빛 노을이 예루살렘 성안으로 길게 드리워질 때, 주님은 당신의 시간이 다가왔음을 직감하셨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죽음을 향한 걸음이 아니라, 비극을 넘어 생명으로 옮겨가는 거룩한 이행의 순간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은 그 고요한 결심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여기서 ‘끝까지’라는 말은 시간의 마침표가 아니라, 당신의 구원 목적을 온전히 이룰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랑의 밀도를 의미합니다.
주님은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겉옷을 벗으셨습니다. 성경은 주님이 겉옷을 ‘벗으셨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서 사용된 헬라어 ‘티데미(tithemi)’는 ‘내려놓다’ 혹은 ‘바치다’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는 구약적 맥락에서 ‘생명을 내려놓다’ 혹은 ‘목숨을 바치다’라고 표현할 때 쓰이는 의미와 궤를 같이합니다.
즉, 주님이 겉옷을 벗어 내려놓으신 행위는 단순히 의복을 정리한 것이 아니라, 장차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생명을 내어주실 희생을 미리 보여주신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요한복음의 세족식은 공관복음서에 기록된 ‘성찬례 제정’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의미를 지닙니다. 떡과 포도주를 나누며 당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셨듯, 주님은 겉옷을 벗으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당신의 존재를 낮은 곳으로 쏟아부으셨습니다.
대야에 담긴 물은 십자가의 보혈과 맞닿아 있으며, 먼지 묻고 거친 제자들의 발을 어루만지시는 주님의 손길은 영혼을 일깨우는 가장 거룩한 성찬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당혹스러워하며 주님을 가로막았습니다. 스승이 제자의 발을 씻기는 전복된 질서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시며, 이 낮아짐의 신비에 동참할 것을 권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나중에야 깨달을 그 사랑은, 배신의 쓴잔을 마실 제자의 연약함까지도 이미 품어 안은 인내의 결정체였습니다.
더욱 가슴을 울리는 것은 가룟 유다를 향한 주님의 손길입니다. 마귀가 그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다는 것을 주님은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유다의 차례가 되었을 때 그를 건너뛰지 않으셨습니다. 배신의 길을 걷고 있는 그 더러워진 발을 똑같이 정성스레 닦아주셨습니다. 그것은 유다에게 주시는 마지막 기회이자, 당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자조차 ‘자기 사람’으로 여기시는 무한한 긍휼이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때로는 유다처럼 주님을 등지기도 하고, 베드로처럼 무지함 속에 머물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은 우리의 자격에 머물지 않고 우리의 존재 그 자체를 끝까지 붙드십니다.
대야 속에 담긴 그 물은 단순히 먼지를 닦아내는 물이 아니라, 허물 많은 우리를 끝내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눈물이었습니다. 생명을 내려놓으심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신 그 ‘끝까지’의 사랑이 오늘도 낭망한 우리를 일으켜 세웁니다.
HeartWalk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