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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_J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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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저녁, 공기는 사뭇 엄숙했다. 생의 마지막을 예감한 스승은 제자들의 발 앞에 무릎을 굽혔다.
먼지 묻은 발을 물에 적시고, 수건을 들어 정성스레 닦아주는 그 손길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비장함이 서려 있었다.
흔히 발을 가장 부끄럽고 비루한 곳이라 여기지만, 주님은 그곳을 당신의 사랑이 가장 먼저 닿는 성소(聖所)로 삼았다.
자신을 팔아넘길 유다의 마음을 알고서도 그 발조차 차별 없이 씻어주던 숭고한 굴욕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 거룩한 침묵의 선언이었다.
요한복음 13장 13절에서 15절에 이르러 주님은 명확히 말씀하신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여기서 '옳으니라'는 단어는 단순한 도덕적 당위를 넘어 '사랑의 빚을 졌다'는 의미를 품는다.
스승이 먼저 몸소 실천한 이 행위는 단순한 봉사가 아니라, 제자 교육의 본질적인 목적을 투영한 것이었다.
가르치는 자가 가리키는 방향은 결코 화려한 언변에 있지 않고, 오직 그가 보여주는 삶의 무늬에 있기 때문이다.
참된 스승은 지식을 머리에 채워주는 자가 아니라, 가슴 속에 잠든 선한 가능성을 깨워 밖으로 끌어내는 자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그 교육의 완성을 위해 친히 '본(Example)'이 되었다.
지휘관이 뒤에 서서 명령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위험한 최전선에서 발을 맞추어 걷듯, 주님은 섬김의 실천을 통해 제자들이 장차 걸어가야 할 길을 직접 그려내셨다.
주님을 닮고 싶다 말하면서도 누군가를 향해 마음의 가시를 세우고 있다면, 그것은 아직 스승의 뒷모습을 제대로 대면하지 못한 까닭이다.
세상은 더 높은 곳, 더 화려한 자리를 갈망하며 계급의 사다리를 오르려 한다.
그러나 주님의 시선은 언제나 수직의 아래를 향했다. 하늘 보좌를 버리고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온 그분의 '깊이'는 곧 영적인 '높이'로 승화되었다.
우리가 찾아가야 할 땅끝은 지리적인 먼 곳이 아니다. 절망의 끝자락에서 홀로 울고 있는 이웃의 곁, 온기조차 끊긴 채 시린 겨울을 견디는 소외된 방 한 칸이 바로 오늘날의 땅끝이다.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라" 하신 약속은, 우리가 그 낮은 자리로 내려갈 때 비로소 주님을 만날 수 있음을 역설한다.
유다가 떡 조각을 받아 들고 나갔을 때, 성경은 "밤이러라"라고 기록한다. 빛이신 스승을 떠난 영혼의 계절은 이처럼 캄캄한 어둠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주님은 그 밤을 선택한 유다에게조차 애잔한 심정으로 끝까지 사랑을 베풀었다.
이제 우리는 그 밤의 어스름을 뚫고 빛의 근원이신 주님께로 돌아서야 한다.
허리를 굽히는 법을 배우는 것, 누군가의 젖은 발을 닦아주는 그 낮은 자세 속에서 비로소 땅끝까지 흐르는 주님의 온기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HeartWalkChurch.